정자와 난자의 수정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이루어지며, 1년 가까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난다. 태아는 수정부터 탄생까지 어머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기에 모성이란 학습이 아닌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본성에 가깝다. 부성이란 문화적이다. 아버지는 정자의 제공 역할만 하며, 자기 자식의 출생에 어떠한 신체적 기여를 하지 않는다. 부성이란 자식의 출생과 더불어 점차적으로 학습되는 인위적인 감정에 가깝다. 근본적으로 부성은 모성보다 기반이 약하고 결핍되어 있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 대결하기 전 자신의 아내를 만나러 간다. 아내는 성 안에서 적과 싸우라고 하지만 헥토르는 아버지로서의 의무와 도시 국가의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성 밖으로 나가서 정정당당히 싸우기를 결심한다. 이때 헥토르는 자신의 아들을 안고자 하나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되어 있기에 아들은 아버지를 거부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투구와 갑옷은 부성의 특징을 상징하는데 이것들은 전쟁에서 신체를 보호하지만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도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
아버지들은 나약한 자신의 부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신격화했으며, 사냥과 전쟁을 남성만의 고유물로 전락시켰다. 남성들은 전쟁을 위해 신체를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하며, 적과의 대치 상태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개발해야 했다. 전쟁을 상징하는 갑옷과 투구는 이런 공격적인 아버지의 특징을 상징하며, 남성의 강건해 보이는 이미지는 사실 나약한 부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기에 헥토르의 갑옷과 투구는 아들과 가까워지는데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이처럼 트로이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와 아들녜 관계는 미약했으며 남성은 아버지로서 아들을 대하는 법을 몰랐다. 하지만 헥트로는 다르다. 헥토르는 우는 아들을 안기 위해 투구를 벗는다. 투구를 벗는 행위는 아버지의 권위를 내려놓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자신을 가족과 가로막는 장애물을 벗어던지고 아들을 안아 하늘로 들어 올리며 축복을 내린다. 헥토르는 부성을 위해 한 걸음을 걷는다. 하지만 부성은 나약하다. '일리아스'에서 헥토르는 문명을 상징하며, 아킬레우스는 야만을 상징한다. 문명이 야만에 도전하지만 문명은 야만에 패하고 만다. 심지어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패자에게 장례식을 요구하지만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렇듯 문명은 발전과 퇴행을 반복하는 것이다.
부성은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로 인해 회복된다. 프라아모스는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서로를 용서하며 눈물을 흘리고, 서로의 아픔을 확인한다.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되찾으며, 문명과 야만은 다시 타협을 맺게 된다. 아래 그림은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손등에 입맞춤하며 간청하는 장면이다. '일리아스'의 이 장면은 수없이 많은 회화 작품에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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