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처음 보았던 때가 떠오른다. 서점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제목이 눈이 띄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을 때렸다. 표지를 보는 순간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이 느껴졌다. 책을 고를 때는 저자, 책의 내용, 별점, 리뷰의 개수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구입하지만 이 책은 보는 순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프롤로그를 읽는 내내 부성이라는 감정에 대해 어렴풋이 다가가게 되었으며, 내가 살면서 아버지에게 했던 모진 말과 행동들이 떠올라 죄책감으로 눈물을 머금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과거의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이였다면, 지금의 아버지는 사랑스럽고 자상하며 친구처럼 놀 수 있는 아버지를 원한다. 하지만 가정 내에서만 그럴 뿐이지 사회의 아버지는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에서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과 싸웠을 때 이겨야 하며, 높은 자리에 위치해 있어야 하며, 경제적으로 가정에 풍족함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상반되는 양면을 동시에 요구하며, 아버지 역시 스스로 이를 느끼며 정신적으로 취약하게 만든다. 또한 부성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태생적으로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도 부성은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며 문명을 만들어왔다. 이성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는 이 부성이 상실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갈 곳을 잃었다.
한 문학 작품이 떠오른다. 세 형제의 아버지는 건물로 출근을 하신다. 세 형제는 아침마다 아버지에게 경례를 하며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자신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강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아들이 우연히 건물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보게 되는데, 아버지는 건물의 주인이 아닌 경비원에 불과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낮은 지위 계층에서 명령을 받으며 살아가는 남자였던 것이다.
최근에 가정 교육이 어려워진 이유 역시 부성의 상실에서 볼 수 있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힘과 권위가 있어야 한다.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때때로 자녀들에게 명령하고 혼을 낼 수도 있다. 자녀들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올바름을 교육받고, 그릇된 행동은 고친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권위적인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로서 친구와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자상한 아버지를 원한다. 가정에서 교육적 기능을 해주어야 하는 아버지의 역할은 더 이상 통용되지가 않는다.
청소년 재판의 천종호 판사님이다. 호통판사로도 유명하다. 이 분은 판결과정에서 잘잘못만 가리는게 아니라 일진 학생들에게 호통을 치며 심하게 꾸짖는다. 판결을 받는 일진 아이들은 사회적 막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웬만한 잘못은 사회에서 덮어주기 때문에 청소년 재판까지 갔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음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죄책감이나 반성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호통판사 앞에서는 그지없이 나약해진다.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빈다. 일진 아이들이 왜 이 판사 앞에서는 이렇게 달라지는 걸까? 그것은 판사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판사는 자신의 명령으로 아이들을 집으로 보낼 수도 소년원으로 보낼 수도 있다. 판사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달려있기 때문에, 즉 권력이 있기 때문에 판사는 학생을 호통치며 꾸짖을 수가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아버지는 마치 손님인 마냥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아버지는 가정에 소외되며,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소외되기도 한다. 우리는 아버지와 부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찰해봐야 할 시점이다. 부성의 회복은 가정의 회복과 더불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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