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아버지는 아들에게 보이는 존재였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부양하며 자녀를 교육하는 역할을 하였다. 집에서 멀리 있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하면서 아들들은 아버지를 항상 관찰하고 배우며 따라 하고자 하였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롤모델이었다. 이런 아버지들이 점점 가족들에게 멀어지는 사건이 생긴다.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아버지들은 공장으로 출근은 하기 시작했다. 아들들은 아버지들이 공장에서 무엇을 하는지 볼 수가 없었다. 때때로 농촌의 아버지는 도시의 공장으로 가버리면서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을 만나지도 못했다. 또한 교육의 역할을 학교가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들의 교육 역할이 교사로 대체되었다. 학교에서는 또래들을 만났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보다 또래 친구들 간의 관계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하며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가 퍼지기 시작한다. 아들들은 더 이상 아버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아버지는 가족으로부터 아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집에 돈만 가져다주게 되었다. 아버지들은 가족들과 특별한 애정 관계를 맺지 못하고, 가끔 술이나 마시며 삶의 고단함을 푸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아버지들은 전쟁터에 끌려갔다. 전쟁 중에 어떤 아들들은 아버지를 온전히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어떤 아들들은 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두게 되었다. 아버지는 유약하며 가족에게 짐이 되는 존재였다.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는 그냥 아저씨였을 뿐이다. 유년기의 중요한 시절 동안 아버지들은 부재하여 정서적 관계를 맺지 못하였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아버지들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고, 전쟁에 참여한 아버지는 전쟁의 대량 학살의 주무자가 되어 버렸다. 부성의 패러독스이다.
부성을 빼앗긴 아들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아버지가 되었을 때 불행하게도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다. 2차 세계대전에는 그들의 아들들이 전쟁에 참여해야 했으며, 부성을 느끼지 못했던 세대들이 부성을 주려는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남성들은 위아래로 부성을 뺏기는 세대가 되었다.
부성을 뺏긴 이들은 동료애, 형제애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런 정신은 그릇된 부성의 집념을 탄생시켰다. 파시즘과 나치즘이다. 파시즘과 나치즘은 강력한 독재 정치로 강력한 부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 볼 때는 그릇된 부성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로부터 부성은 계획, 인내, 문명 등을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반면에 파시즘과 나치즘은 독재와 더불어 전체 집단주의를 표방한다. 개인의 삶보다는 전체를 위한 희생을 강조했고 이는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리고 문명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독일의 나치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파시즘 무솔리니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며, 이는 그릇된 부성의 몰락을 의미한다. 무솔리니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며 거꾸로 매달린다. 그러면서 현대에는 아버지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들만이 우리들의 뇌에 각인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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