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하는 단어가 있다. 힐링. 세상 살기가 각박하다 보니 사람들은 힐링을 요구한다. 힐링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꽤 많이 활용되는 소재이다. 이 유행은 소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불편한 편의점이다.
힐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그 국가는 일본이지 않을까 싶다. 일본 소설 중에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정신상담 치료를 해주는 의사이다. 이 의사는 덩치가 상당하며(독고처럼)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독자들에게 웃음을 준다.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는 그런 의사의 행동이 낯설게 느껴지고 심지어는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상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내담자는 스스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며 힐링을 받는다.
본 소설 역시 비슷한 구조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그들은 우리 바로 옆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별한 인물이 아닌 주변의 흔한 인물이 나온다는 점이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힐링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와 고민을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가지고 있다. 나 혼자 고독하게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많은 이가 이 책을 읽고 충분히 공감하였으리라. 독고는 편의점을 방문하는 손님에게(어쩌면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자에게) 도움을 주고, 정서적인 면을 보듬어 준다. 독고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심리적인 치료까지 받게 된다. 그의 과거가 의사였던 점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였을 수도 있다. 물론 성형외과 의사여서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분명 의대생 및 인턴 시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리라.
이 책의 두 번째 힐링 요소는 단순함의 미학이다. 영화를 볼 때 화려한 액션은 통쾌함을 주지만 본 후에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우리의 시감각은 오히려 피곤함을 느낀다. 시끄러운 락음악을 듣고서 마음의 평온을 가질 수는 없다. 오히려 청감각은 피곤함을 느낀다. 우리가 빗소리를 가만히 들으면서 힐링을 느끼듯이 힐링이라는 요소는 단순함에서 나와야 한다. 이런 요소는 일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 특징이다. 특히 음식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이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 대단한 영상과 극적인 내용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보고 느끼는 것을 잔잔하게 들려주는 것에 목적에 있으며, 우리는 대단하지 않은 내용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감상하고 있다. 우리는 불편한 편의점을 읽으면서 그 단순함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편의점 업무를 보는 독고와 물건을 사가는 손님들은 대단한 사건을 벌이지 않으면서 훈훈한 내용을 들려준다. 솔직히 이런 요소는 소설로서 매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소설에서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작가가 대신 들려주기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단지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읽었다면 독자는 대단치 않은 내용에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설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 이 책은 충분히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속편이 나온 것은 그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힐링의 세 번째 요소는 우연한 만남이다. 독고와 손님의 만남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히 같은 시대에 태어났으며,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으며, 같은 나라의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특히 모두가 자고 있을 심야 시간의 만남이라는 것은 우연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우연한 만남 속에서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간다. 우리가 여행을 가는 목적이 무엇인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닌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우리는 모두 새롭고 우연한 만남을 원하고 있다. 여행지가 주는 낭만은 그 즐거움을 배로 만들어준다. 독고와 편의점 손님은 이 우연한 만남을 단지 돈과 물건이 오가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아름다움으로 만들어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밤 9시다. 자정이 되면 왠지 나도 모르게 편의점을 방문해야 할 것만 같다. 밤 12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메마른 목소리로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라 가볍더라도 안부라도 물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의 제목을 내 마음속으로 다시 지어 보았다. 그 제목은 ‘심야의 편의점’이다. 그렇다. 일본 드라마 ‘심야 식당’에서 따왔다. 심야 식당은 자정 12시에 오픈한다. 그리고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의 독고도 그렇다. 심야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심야에 편의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의 마지막 편은 독고의 고백이다. 유능했던 의사에서 어떻게 노숙자라는 인생 나락으로 떨어졌는지 그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차갑게 들려준다. 결말에서 독고는 정신을 회복하고, 코로나가 발생한 대구 지역을 향해 의료 봉사를 가게 된다. 당연히 그곳에 살고 있는 가족과 상봉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과연 독고의 아내가 독고의 잘못을 용서해 줄 것인지, 아니면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인지가 다음 속편 이야기의 핵심이 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에피소드가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아 독고를 용서하는 아내의 모습을 예상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왜 독고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이인 아내에게 자신의 불법 의료 행위를 고백하지 못했을까? 자신이 아무리 잘못된 행동을 했더라도 가족인 아내는 독고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는 공동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정의롭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마피아 두목과 한 정치인은 가족으로 묶여있다. 그 정치인은 자신의 형인 마피아 두목의 은신처를 말하라는 청문회의 요구에 거절 의사를 표한다.
독고가 자신의 아내에게 잘못을 말하지 못한 이유는 서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고와 아내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나지 않았다. 서로의 조건이 만족 되었기에 사랑 없는 결혼이 가능했다. 그런 상태에서 잘못된 의료 행위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아내가 알게 된다면, 독고는 아내가 자신에게 이별을 고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속편에서 독고와 아내의 재회는 조건이 아닌 사랑으로 만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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