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설책을 읽는다. 자의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독서 모임에서 정해진 책이기에 비자발적으로 읽게 되어 책을 선정함에 있어서 한계가 있었으며, 자연히 내용적인 면에서도 실망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책은 심리 묘사 책이라 할 수 있다. 특별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사사로이 느껴지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사랑과 욕망이라는 감정을 주로 다룬다. 소설의 내용적인 면에서는 특별한 사건이 없이 심리 묘사가 거의 전부이다. 묘사가 너무 상세해서 소설의 이야기 진행에 집중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그렇기에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 표현이 과장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솔직히 감정의 따뜻한 면보다는 성욕이라는 천박한 욕망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작가는 남녀 간의 사랑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란 무릇 철학, 비극, 역사 등을 품고 있어야 한다.
철학은 삶의 태도를 나타낸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체의 철학을 잘 표현하고 있다.
비극은 정화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귄터 그라스의 '넙치'는 비극이라는 감정과 역사를 동시에 다룬다. 선사시대 부터 남성들의 폭력과 억압에 짓눌리며 살아야 했던 모든 어머니들의 희생을 다룬다.
역사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경리의 '토지'는 비극적인 역사 상황 속에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의 불행과 어떻게든 살아나고자 버티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위 세 개의 책들이 위대한 이유는 철학, 비극, 역사가 잘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담 보바리'에는 이것이 없다. 옆 집에 이사 갔는데, '청년이 또는 여인이 아름다워서 사랑에 빠졌다. 고백하고 싶다. 갖고 싶다.' 등 정말 소시민적인 감정을 세세히 보여준다. 굳이 소설을 써야 했나 싶을 정도로 사건다운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나의 기준치에 맞추기에는 소설의 내용이 천박하다고 느껴진다.
또다른 불편한 점은 사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등장 이후로 문명과 기술이 많이 발달했지만 심리적인 면에서는 아직 똑같은 인물이다. 200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그 등장인물은 현대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주변의 멋진 남성들과 쉽게 사랑에 빠지는 마담 보바리의 천박한 모습, 아름다운 마담 보바리를 얻고자 애쓰는 남성들의 욕망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갖지 못하는 여성에 대한 상상 속의 욕망을 항상 품고 있다. 작가는 부끄러운 감정의 솔직한 내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기분이 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불편한 점은 나는 욕망을 현실화하지 못하고 언제나 억눌려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남성들은 꽤 매력적으로 등장하며, 자신이 원하는 여인을 얻기 위한 투쟁과 노력에서 성공을 이룬다. 실제 내 주변의 상당히 멋진 남성들은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가진다. 이들은 멋진 남성이기에 여성들이 먼저 관심을 표현하기도 하며, 거리를 좁혀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결혼제도에서 철저히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사회이지만 결혼 전, 결혼 후에도 이성과의 빈번한 접촉은 10% 이내에 해당하는 알파남들과 대부분 여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반면에 나는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여성들은 나를 불편해한다. 선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나와 같은 사람이 주는 선행은 단지 여성들에게는 부담을 뿐이다. 그것을 알기에 욕망하지만 표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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